2008년 09월 17일
추석
1.
연휴가 시작되는 날의 강남고속버스터미널은 굉장하다. 혼잡하고 붐비고 산만하고, 그런 와중에 '집으로 간다'는 설레임에 약간 달뜬 분위기까지 겹쳐진 굉장한 에너지가 있다. 길고 긴 줄과 이리저리 치이는 사람들에 짜증이 치솟다가도 '응, 차표샀어, 몇시차 타고 갈거야' 이런 전화 목소리는 또 어찌나 살가운지.
전전날 예매해 놓은 6시 20분 차표를 혹시나 앞시간으로 바꿀 수 있을까 했는데 '오늘은 완전 매진입니다'에 5초간 낙담. 하지만 나도 서울에 와 7번째 맞는 대명절이 아니던가. 표는 없어도 버스에는 항상 자리가 있다는 진리를 알기에 발권을 하고 화장실에 잠시 들른 후 승강장으로 갔다. 3시 40분 임시편성 된 버스는 3시 50분께 도착해서 사람들을 태웠다. 표가 있는 사람들을 절반 정도 태우고 나더니 검표원은 '빨리 가실 분'을 외치기 시작했다. 나는 시간이 한참 남은 내 표를 주고 버스에 올라 타 아무자리에 앉았다. 4시 서울 출발. 북대구에서 불이 나는 바람에 한 삼십분 정도 밀린 것을 제외하고는 차는 씽씽 달리고 달려 6시간 정도 만에 나를 고향에 데려다 놓았다.
2.
추석선물로 아빠에게 전동칫솔을 선물했다. 선물하면서 나는 이렇게 말했다. "아빠, 동동이 태어나서 안아주고 뽀뽀해주고 하려면 입에서 담배냄새도 나면 안 되고 충치도 있으면 안 돼요. 그러니깐 이거 가지고 양치질 잘 하셔야 돼요." 아빠는 내 말에 피식 웃으면서 돋보기를 끼시고 사용설명서를 차분히 읽으셨다. 주방에서 나의 선물 증정식을 가만 듣고 계시던 엄마는 아빠가 예전 같으면 귀찮다, 됐다, 알아서 할 거다, 로 응수하며 시큰둥해 하셨을텐데 동동이-올케언니 뱃속의 아기- 이 한 마디에 아무 잔소리 없이 선물을 받으시는 게 너무 신기하다고 하셨다.
선물 증정식을 하면서 내가 또 당부한 게 있었는데, 새언니가 오면 아빠는 안방화장실을 쓰시고 담배는 베란다에서도 피우지 마시고 1층에 가시라는 거였다. 평소의 아빠는 엄마와 나의 눈총을 받으면서도 꿋꿋하게 거실에서 담배를 피우시는 분이시다. 내가 두 번씩이나 신신당부를 하자 알았다고 짧게 대답하셨고 오빠부부가 집에 있는 이틀 동안 딱 한 번 베란다에서 담배를 피우셨다(고 한다. 나는 담배피는 모습을 한 번도 못 봤고). 오빠가 결혼을 하고 오빠부부가 집을 방문할 때 마다 아빠의 모습을 관찰하는 게 너무 재미있어졌다. 명절인데 머리 염색 좀 하라는 엄마의 말에, 이제 할아버지인데 뭐하러, 라고 대답하셨다는 아빠. 내년 1월 동동이가 태어나서 진짜 할아버지가 되면 어떠실지. '아빠관찰일기'라도 쓰고 싶어지는 요즘.
3.
연휴가 시작되는 날의 붐비는 버스터미널에서 초중학교를 같이 다녔던 친구를 보았다. 0.1초간 눈이 마주쳤고, 나를 알아보고 나에게 다가오는 그 애를 나는 고개를 돌려 다른 곳을 바라보는 것으로 대답했다. 그래서 나는 친구를 '만났다'가 아니라 '보았다'라고 밖에 말할 수 없게 되었다. 초등학교는 두 번인가 같은 반을 했고 꽤 친했던 아이인데, 나는 왜 고개를 돌렸을까. 눈이 마주친 순간, 누구인지 이름 세 글자까지 또렷하게 생각이 날 정도였는데 나는 왜 아는 척 하지 못했을까. 심지어 같은 버스에 겨우 두 좌석 정도 떨어진 곳에 앉았으면서도 6시간동안 애써 외면했다.
휴게소에서 잠시 쉬는 동안 말을 걸까 하다가 아는 척을 해서 무얼 하겠는가 하는 생각에 그만두었다. 친구도 나를 알아보았으니 내가 아는 척을 했을 때 상대방은 나를 기억 못하는 민망한 상황이 연출될 리도 없었고, 나는 더 이상 백수도 아니었고, 어린 시절 못된 짓만 골라하던 애도 아니었는데 무엇이 두려웠던 것인지 아직도 명쾌하게 답을 찾을 수가 없다. 다만 한 가지를, 중간 정류소에서 내리는 그 애의 등을 보며 나에게 다짐했다. 너, 이제 절대로 외롭다고 하지마. 절대.
4.
엄마가 봉숭아물을 예쁘게 들여주었다. 외할머니한테 부탁해서 받은 잘 짓이겨진 봉숭아잎을 손톱에 덜어놓고 엄마는 일회용비닐장갑의 손가락들을 가위로 오려 열손가락에 끼워주셨다. 너무 꽉 조이면 자다가 실을 풀거라면서 갑갑하지 않을 정도로만 실로 칭칭 감아주셨다. 그리고 이튿날에는 아침밥을 일찍 지어놓고 오빠부부를 깨우기 전에, 투명매니큐어를 발라 주셨다. 엄마는 봉숭아물이 빨리 날아가면 안 되니깐 매니큐어를 발라 놓아야 된다고 하셨다. 나는 아직 잠이 덜 깼으면서도 손가락을 쫙 펴고 엄마가 하나 하나 발라주는 차가운 매니큐어를 가만히 느끼고 있었다.
봉숭아물을 들이기 전날 밤에 엄마는 당신의 빨갛게 물든 손가락을 보이시며 '정월까지 봉숭아물이 손톱에 있으면 좋은 일이 있대, 엄마가 해줄테니까 너도 꼭 하고 가' 하고 말씀하셨었다. 내년까지는 아직 5개월이나 남았으니 과연 그 때까지 남아있을 지 알 수 없지만, 소심하게 빌어본다.
손톱아 좀 천천히 자라렴!
# by | 2008/09/17 23:55 | 가끔쓰는일기 | 트랙백 | 덧글(0)










